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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Camp

가볍고도 무거운 가상의 무게들

"키치는 백발백중 감동의 눈물 두 방울을 흐르게 한다, 첫 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 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를 보고 모든 인류와 더불어 감동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키치가 키치 다워지는 것은 오로지 이 두 번째 눈물에 의해서다.
모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오로지 이 키치 위에 근거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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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매력 있음'은 어떤 관계인가? 대상에 대한 진실한 고민과 시각적 만족은 공존할 수 있을까?
어떤 특정한 소재가 진실을 넘어 무게있게 다뤄지는 것은  다큐멘터리적 연출에 지나지 않을까?

어쩌면 그것은 작업자 고유의 시선이 드러난 가장 가볍고 진솔한 방식이 아닐까?

 나의 어떤 이미지 생산물들은 지나치게 가벼웠고, 진실하게 다루고자 했던 주제는 디지털 과정 속 열화되어 버린다. 가볍고 맑고 투명한 것들은 어떤 무게들을 등지고 반사되는 듯하다.
열심히 컴퓨터가 만든 무언가가 가상의 것이 되고, 결과가 소비되는 방식은 가볍게 느껴진다.

그러나 가공하는 그 과정들-수많은 크롭과 드래그,저장되지 못한 채 파생된 파일들을 양산하는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몇몇 내용들은 쉽게 드러내거나 게시할 수 없던 것들이다. 랜덤하게 생성된 것들도 시간의 무게를 짊어지면서 가라앉고 만다.

그 원본은 별 거 아닌 것들-무게를 가지지 못한 것들을 진지해 보이게 하고, 밝힐 수 없던 무언가를 쉽게 만들고 싶었다.

5개의 이미지는 어떤 호기심과 집요함 끝의 되돌아 섦의 과정이다. 수많은 레이어들이 응축되고 가벼워지며, 모아두고 꺼내려 했다가 허탈하게 내보이게 되는, 긴 시간 속 수집해 온 이미지들, 그렇기에 더욱 가볍게 만들고 싶었던 갤러리 속 삶의 진지한 조각이다. 파일의 용량이자 컴퓨터의 무게, 무거움 끝에 산출된 가벼움은  깊이 머물렀다 결국 떠나게 되는, 끝나지 않는 캠핑의 여정이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물질 없는 물성적 이미지란 무엇일까?  아버지의 편지를 디지털로 복원하고, 재가공과 편집을 통해 더욱더 시간성이 깃들거나, 눈물자국이 배어들도록 현실적인 조건들을 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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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폴더의 탄생

디지털과 아날로그 경계의 정체성을 가진 그림은 말끔한 그래픽의 특성에서 벗어나 탁함과 손때묻음이라는 목표 아래, 투명체에 인쇄되어 다시 얇아진 상태로 전시된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교차를 반복하고 무효화시킨 결과는 데이터 상실과 기억-잊어버림으로 인해 삶을 백업(Backup)하고자 하는 지속적 욕망 끝에 잔상으로 남은 망막 안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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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이 지나면 사라져요

 

데이터가 사라지면 감정적 경험도 허구가 될까? 30일이 지나면 사라지는 메신저 대화에서 상대와 진지한 편지를 주고받는다. 유명 애니메이션을 모방한 듯한 게임은 30초가 지나면 광고가 떴고, 30일이 지나면 데이터가 지워지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의 세계관 안에서 우리는 스토리 왕국을 오가며 100개의 삶을 체험하는 여행자였고, 그 설정은 낭만적으로 다가와 게임의 편지 기능은 유저간, 캐릭터 간의 유대를 형성하고 롤플레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며, 갑자기 받은 따뜻한 텍스트들 안에서 모토로 삼고 싶은 문장이 생길 정도로 의미 깊었다. <낯선 여행자에게>는 언니가 게임을 익히며 방황하는 심정을 담은 편지이며, 그 도시의 삶은 가상의 설정임에도 서울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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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기억_Compressed

 프로그램의 몇 단어는 개념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매력적으로 들린다. 많은 시스템 용어가 있지만, 그중에서 좋아하는 것은 RAW와 Compressed이다. 이미지를 편집하며 상단에 표기되는 이 단어는 ‘날것의’, ’압축됨’이라는 뜻이다. 이 이미지가 소리나는 철문의 텍스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마치 땅처럼 보이도록 가공하고 싶었고, 인쇄된 후 확인해보니 먼지에 가까웠다. 그것이 RAW한 쇠에서 비롯되고 텍스쳐가 추출되고 Compressed 되어 인쇄된 것처럼, 기억도 여러 단계를 압축하고 산화되는 성질을 띄고 있다. 과정에 따라 목적이 수정되는 경험을 거쳐, 그 유동성을 긍정하게 된 캠프의 첫 수집물이다.

Image Camping

인디안 행어-카라반에서 조리도구 등을 걸 때 쓰임-에 걸린 5장의 이미지는 간직과 빛바램-열화의 과정 끝에 마침내 드러나게 된 고유한 삶의 조각들이며, 장치 안에 쥐어온 소스들을 곱게 디지털 무두질하여 내보인 일종의 빈티지 마켓이다.

이미지의 원 주인이 명시된 이 컬렉션은 지지체와 재료에 의해 임시적이고 가벼운 특성을 띄면서도 그 각각의 내용에 배분된 정서적 무게와 정체성을 걸어 잠그려 한다. 관람자-디지털 캠퍼는 5장의 투명한 인쇄물을 만지며 내용을 감상하면서도, 동시에 그 사이에 매달린 체인 스토퍼-잠금장치들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캠핑 카라비너와 몇 년 동안 착용하며 피부질환을 불러일으킨 녹슨 펜던트, 24시 반려동물 매장의 강아지 목줄, DIY 키링, 철물점과 타협 끝에 거래하게 된 퀴어적 자물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투명하면서도 무거운, 열려있으며 잠긴, 가벼운 인디안 행어와 무거운 벽돌로 지지하고자 하는 설치물은 가상세계 속 기억들에 대한 양가적인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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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Camping #1>
Mixed Media
Indian Hanger,dog chain,Printed acrylic pannel,Key and Locker,etc. 2023
Wrecking ball

정성스레 만든 팔찌를 실수로 끊어트린 적이 있다.
발에 따갑게 밟히던 구슬을 처리하기 귀찮다는 마음보다도,  얄팍한 연결고리-저장장치로 인해 내 나름의 반짝이던 개체들을 모아두고자 한 시도가 실패했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구슬을 보이는 대로 줍다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관두었다. 몇 개는 간직하고 몇 개는 버렸다. 언니는 다시 만들면 되니 괜찮다고 위안해주었고, 나는 몇 번 더 팔찌를 기억해서 만들었으나 원래의 그것이 아닌, 모두 다른 모양이 나올 뿐이었다.
그리고 5달이 지나 방 청소를 하다가 침대 밑에 흩어졌던 구슬 몇 개가 아직도 숨어있음을 발견했다.
모서리 구석구석, 오래도록 외면했던 자리 끝에. 나는 그 팔찌에 분홍색 구슬이 있었음을 다시금 기억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와르르 쏟아지는 것, 그 잔해가 오래도록 남아 쉽사리 치워버리기 힘든 것. 다시 발견함으로써 그 원형을 되새기게 되는 것. 이 일상 속 과정은 이미지의 상실과 전회 끝의 씁쓸한 위안과 미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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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eo Installation, FHD 싱글채널 영상 재생, 00:04:0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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